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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 우리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건 우리 자신뿐이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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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 우리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건 우리 자신뿐이다.

BetterToday 2019. 1. 20.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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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소설 <데미안>은 이렇게 시작한다. 첫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데미안>은 인간의 내면에 대한 이야기이다. 작품의 주인공인 싱클레어의 성장과정에서 겪는 방황과 구원을 통해 이상적인 자아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준다. 주인공의 멘토이자 친구로 등장하는 데미안은 이상적인 자아의 모습을 보여준다.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이렇게 묘사한다.


"지금 그가 완전히 자신 속으로 들어가 버렸음을 나는 전율로써 느꼈다. 나는 한 번도 저토록 고독해진 적은 없었다. 나는 그와 아무런 관련도 없었다. 나에게 그는 도달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사람은 자신의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자신의 모습이라는 것. 지은이는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서문에서 이렇게 표현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일찍이 그 어떤 사람도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본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려고 노력한다."


싱클레어와 같은 범인들은 완전한 자신이 되어본 적이 없지만 데미안은 완전히 자신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존재이다. 데미안의 이러한 면모가 그를 이상적인 인물로 만들어준다. 데미안은 싱클레어가 자신과 같은 자아에 이르는 과정을 도와준다. 다른 말로, 싱클레어 스스로의 모습을 찾아가는 여정을 도와준다. 작품의 마지막에서 데미안은 사라지고, 마침내 싱클레어는 본인의 모습을 찾는다.


"완전히 내 자신 속으로 내려가면, 거기 어두운 거울 속에서 운명의 영상들이 잠들어 있는 곳으로 내려가면, 거기서 나는 그 검은 거울 위로 몸을 숙이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면 나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이제 그와 완전히 닮아 있었다. 그와, 내 친구이자 나의 인도자인 그와."


데미안이 싱클레어의 친구가 아니라 싱클레어 내면의 또 다른 자아라는 해석이 있다. 데미안과 싱클레어는 항상 우연히 만난다. 데미안이 싱클레어를 도와주는 것도 물리적인 도움이 아닌, 정신적인 도움이라는 점이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한다. 싱클레어에게는 데미안 말고도 피스토리우스라는 멘토가 있었다. 그는 싱클레어 의 여정을 도와주지만 결정적인 구원은 데미안에게서 온다. 그런데 데미안이 정말 싱클레어 본인의 또 다른 자아라면, 싱클레어는 스스로의 의지로 이상적인 자아에 도달한다는 것이 소설의 줄거리가 된다.


"각자가 자기 나름의 목표를 향하여 노력한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 건 누구나 자기 자신뿐이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다. 타인의 도움을 상징하는 것이 피스토리우스라면, 스스로의 의지를 상징하는 것은 데미안이다. 우리의 삶은 스스로 선택하고 그 많은 선택의 결과로 지금의 자신이 만들어 진다. 결국 본인의 자아를 찾을 수 있고, 그 여정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건 자신뿐이라는 것. 바로 이것이 지은이가 말하고자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자신을 다스리고, 나의 길을 찾는 것은 내 자신의 일이었던 것이다."

"내 인생에서 나에게 흥미있는 것은 오직 나 자신에 이르기 위하여 내가 내디뎠던 걸음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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